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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청성 근황 귀순이유

세상바라보기짱 2019. 5. 2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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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청성 근황 귀순이유

살인?


오늘은 지난 2017년 판문점에서 목숨을 걸고 귀순한 오청성 씨의 귀순 이유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오청성은 당시 북한군이 쏜 40여발의 총탄 중에 무려 5발의 총상을 입었고 생사를 넘나들었는데요.그는 미 항공 의무후송팀 '더스트오프'의 도움으로 30분 안에 병원에 이송돼 응급조치를 받았습니다. 


오청성의 치료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맡았는데요. 15일 동안 진행된 수술 끝에 오청성은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청성은 이국종 교수가 이끈 국내 의료진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구한 것이죠.


그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태극기였다"며 "의식불명 상태에서 북한군이 추격해오고 어머니가 울면서 호소하는 꿈을 꿨다. 너무 생생한 악몽에 두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시 태극기는 이국종 교수가 오청성이 깨어난 뒤 안심할 수 있도록 병실에 따로 비치해 놨는데요. 회복 후 직접 수술 영상을 본 오청성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오청성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남한 문화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개성공단 근처에 살며 남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운전하고 다닐때는 옆에 상관이 없으면 USB에 한국 노래를 500곡 정도 넣어서 들었다. 언젠가는 북한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간부였던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켜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체제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릴 때 부터 한국 야경을 봤다며 판문점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옷차림이 부러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청성은 살인자?

우발적 귀순


귀순 이후... “내가 사람을 죽이고 우발적으로 넘어 왔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억측 때문에 속상했다.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곤란했던 당시의 상황과 속마음을 드러내며 귀순을 감행하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오청성은... "동료 병사와 경계병 사이 벌어진 우발적 충돌이 결정적인 귀순 이유였다"고 말했는데요.귀순한 그날 당 간부의 지시로 산통 중인 간부의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범퍼가 긁혀 수리하러 갔다가 1년만에 다른 운전병 친구를 만났다고 합니다.



운전병 친구는 수리를 마치고 막 가려는 참이어서 오청성 차를 맡기고 친구의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친구는 기분이 좋은지 만취해 모두가 선망하는 오청성의 근무지를 구경하고 싶다며 졸라댔다고 하네요. 그렇게 할수없이 오청성이 친구의 차를 몰고 근무지로 들어오자 못보던 차량이어서인지 초소에서 제지했고 만취한 친구와 경계병들간에 시비가 붙었습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대낮 음주금지 지시가 내려진 상황에서 사건이 더 커지면 내란죄로 처벌 받을 수도 있는 두려운 상황이라 탈출을 결심한 것이라고 하네요.친구가 내린 사이, 5분 걸리는 판문점까지의 2km 거리를 1분만에 주파했고 거의 다왔을 무렵 배수로 구덩이로 처박혔다고 합니다.



오청성은 판문점 지도에서 귀순 경로를 세세하게 짚었고, “내가 선택한 경로가 가장 안전했다. 판문점의 위치와 지리, 그리고 북한 근무성원들의 잠복 위치까지 평소 눈여겨 봤었다. 만약 다른 경로로 귀순을 감행했다면 넘어오기 전에 사살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국종 교수님)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고맙다.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은인이다”면서 “바쁘신 와중에도 하루에도 두 번씩 나를 보러 찾아오신 그분의 따스함에 너무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오청성은 이국종 교수에게 "많은 응원과 기대 속에 열심히 살면서 떳떳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 뵙겠다"면서 고마워했습니다.


오청성 정말 대단합니다.목숨을 걸고 자유를 위해 남한으로 넘어왔다는게 쉬운일이 아닌데 말입니다.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고 착실하게 잘 살아가길 빌겠습니다.

이상,오청성 근황 귀순이유 포스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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